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의제라고 배운다. 국민이 직접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 뽑은 사람이 우리의 목소리를 대신해 정치를 한다는 논리다. 지방의회도 그 연장선이다. 각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지방정부의 예산을 심의하며, 집행부의 권한을 견제한다. 교과서적으로는 더없이 합리적이고 필요한 제도다.
실제로 지방의회는 1991년 부활 이후 30년 넘게 지역 민주주의의 근간을 담당해왔다. 지역 도로를 고치고, 복지 예산을 배분하며, 지역 주민의 민원을 공식적인 정치 채널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방자치의 꽃이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민 가까이 있는 정치, 생활 밀착형 민주주의라는 이상은 분명히 아름답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방의원이 누구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익숙한 풍경을 목격한다. 후보 이름도 제대로 모른 채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유권자들. 지역구 지방의원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지방의원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대의제의 전제인 ‘누가 나를 대표하는지 아는 것’이 이미 무너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인지도만이 아니다. 지방의회의 실질적인 역할을 들여다보면 아이러니가 곳곳에 등장한다. 지방의원은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는 권한을 갖지만, 실제 집행 권한은 단체장에게 있다. 전문 행정 인력을 갖춘 집행부 앞에서 의원들이 예산안을 제대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늘 의문으로 남는다. 지방의원 대부분은 보좌 인력도 없이, 혹은 극히 제한된 지원 속에 수백 페이지짜리 예산서를 들여다봐야 한다.
의정 활동의 실질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조례를 살펴봐도 비슷한 우려가 생긴다. 지방의회에서 통과된 조례 중 상당수가 이른바 ‘베끼기 조례’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타 지자체의 조례를 이름만 바꿔 그대로 올리거나, 실효성 없는 선언적 조문으로 채워진 조례가 무수히 많다. 입법 기능이 형식화되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비용의 문제도 짚어야 한다. 전국 광역·기초의회를 합치면 지방의원 수는 3,700명을 넘는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의정비, 운영비, 사무실 유지비를 합산하면 연간 수천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다. 1인당 연간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에 이르는 비용이다. 이 돈이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인 가치로 돌아오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단순히 돈이 아깝다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효율성과 정당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지방의회 기능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반대편을 봐야 한다.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비판이 타당하다고 해서, 지방의회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과, 제도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의회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한 사례는 분명히 존재한다. 단체장의 무리한 대형 개발사업에 제동을 걸거나, 복지 예산 삭감을 막아낸 의회의 사례들이 전국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일부 지방의회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적극 도입해 시민의 목소리를 예산에 반영하는 실험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는 지방의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민주적 성취다.
집행부 견제라는 기능도 지나치게 가볍게 볼 수 없다. 단체장이 막대한 예산 집행 권한을 독점한 상태에서 의회마저 없어진다면, 지방행정은 사실상 1인 권력 구조에 가까워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방의회가 없었던 1961년부터 1991년까지의 30년 동안, 지방행정의 비효율과 부패는 오히려 더 심각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또한 지방의원은 단순히 입법과 예산 심의만 하는 게 아니다. 지역 주민과 행정부 사이의 민원 창구 역할, 지역 사회 갈등 조율, 취약계층 목소리의 제도적 연결 등 수치로 잡히지 않는 역할이 있다. 이런 기능들은 전문 관료 조직이 대체하기 어려운 정치적 성격을 띤다.
지방의회를 대하는 방식
더 큰 관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보인다.
지방의원에 대한 불신은 사실 지방의회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지방정치를 대하는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 국회의원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시민사회의 감시를 받으며, 공약 이행 여부가 꼼꼼히 따져진다. 반면 지방의원은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감시의 밀도도 낮다.
관심이 낮으면 경쟁도 약해지고, 경쟁이 약해지면 자질 검증도 허술해진다. 이 악순환이 지방의회의 질적 수준을 낮추는 구조적 원인이다. 유권자가 무관심하다는 것은 공급의 문제이기 이전에 수요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방의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떤 감시를 하는지에 따라 지방의원의 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방의회는 일종의 공공재에 가깝다.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고 지불하는 시장 논리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수요자인 시민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요구하지 않으면 공급 품질이 자연스럽게 저하된다. 지방의회의 부실함은 어쩌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방정치에 대한 집합적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인간 심리 측면에서도 살펴볼 지점이 있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큰 문제에는 분노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작은 문제에는 무감각한 경향이 있다. 국회나 대통령의 실정에는 광장에 나오면서, 동네 의원이 예산을 낭비해도 조용한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회보다 지방의회인 경우가 훨씬 많다. 도로, 공원, 복지관, 쓰레기 처리, 지역 교육 환경 — 이 모든 것이 지방행정과 지방의회의 손에 달려 있다.
지방의원은 필요할까
결국 “지방의원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우리는 지방의원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일지도 모른다. 제도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수준은 제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제도를 감시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함께 결정한다.
지방의회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안주도, 둘 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다. 지방의회의 존재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사람을 들여보내고,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다.
지방의원을 욕하기는 쉽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번 자문해볼 일이다. 나는 우리 동네 지방의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그의 의정 활동을 한 번이라도 확인해본 적이 있는가.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데 나도 조금은 기여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완성된 선물이 아니라, 매일 유지해야 하는 습관이다. 지방의원의 문제는 그 습관을 우리가 얼마나 잘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