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의 이면, 서민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경기가 살아나면 모두에게 좋다고. 공장이 돌아가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시장에 돈이 풀리면 그 혜택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고. 그래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경기 살리겠습니다”, “성장으로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구호는 언제나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경기부양을 외치는 정치인은 활기차 보이고, 긴축을 말하는 정치인은 왠지 차갑게 느껴진다. 성장은 선이고, 침체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우리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경기부양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게 고르게 돌아간다는 생각, 한 번쯤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데이터와 현실을 들여다보면 경기부양책이 부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서민에게는 보이지 않는 짐을 얹어주는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경기부양 정책

경기부양의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확대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시중에 돈이 풀리고, 정부가 돈을 쏟아부으면 경제가 자극을 받는다. 이 원리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경기부양 정책은 부자들이 더 혜택

금리가 내려가면 가장 먼저 수혜를 받는 건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다. 저금리 환경에서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고, 주식에 투자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건 이미 자본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한 게임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수년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유지했을 때, 주식시장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 하위 50% 가계의 주식 보유 비율은 전체의 1%에 불과했다. 부양의 과실은 자산가들의 계좌로 집중됐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경기부양으로 유동성이 넘치면 자산 가격이 오른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은 앉아서 자산이 불어나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집 한 채 없는 서민에게 오르는 집값은 내 집 마련의 꿈을 더 멀리 밀어내는 압력일 뿐이다. 경기가 좋아질수록 임대료도 오른다. 삶의 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부자에겐 오히려 좋다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플레이션은 흔히 경제가 과열됐다는 신호로 해석되지만, 그 고통은 계층별로 전혀 다르게 분배된다.

자산가에게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나쁘지 않다. 부동산 가치는 오르고, 실물 자산은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해준다. 대출 부담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빌린 돈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서민에게 더 크게

반면 현금과 월급으로 생활하는 서민에게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세금이다.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장바구니가 가벼워지고, 외식이 사치가 되고, 공과금 부담이 커진다. 자산은 없고 소비만 하는 구조에서 물가 상승은 구매력의 침식을 의미한다.

2021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인플레이션 국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을 쏟아붓고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한 결과, 부동산과 주식은 치솟았고 동시에 생필품 가격도 급등했다. 자산가의 순자산은 커졌지만 저소득층의 실질 생활 수준은 악화됐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왔다.

 

경기부양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고 경기부양이 무조건 나쁜 정책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경기침체나 불황 국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일자리 감소는 서민에게 직격탄이다. 불황이 깊어지면 가장 먼저 해고되는 건 비정규직, 저소득 노동자다. 이 맥락에서 경기부양을 통한 고용 유지는 분명한 서민 보호 효과가 있다. 성장이 멈추면 복지 재원도 줄어든다. 세수가 감소하면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경기부양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집중해서 돈을 쓰느냐가 핵심이다. 취약계층 소득 지원, 공공 임대주택 확대, 의료와 교육 투자처럼 자산이 아닌 삶의 질을 직접 높이는 방향의 재정 지출은 성격이 다르다. 부양의 방향이 자산 시장으로 향하느냐, 사람의 삶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정반대로 갈릴 수 있다.

 

경제학의 낙수 효과는 왜 실패했나

낙수효과

경기부양의 논리적 기반 중 하나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다. 위에서 물을 부으면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개념. 부자가 더 잘 살면 투자가 늘고, 고용이 창출되고, 그 혜택이 아래로 퍼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의 데이터는 이 이론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OECD와 IMF의 여러 보고서는 소득 상위 계층의 부가 늘어났을 때 그 효과가 하위 계층으로 실질적으로 전달되는 증거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오히려 부의 집중이 심화될수록 경제 전체의 소비 기반이 약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성장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분석이 늘고 있다.

인간 심리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경기가 좋다는 뉴스가 넘쳐나도 내 삶이 나아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낀다. GDP가 성장하고 주가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왜 나는 더 힘들까, 라는 물음은 사회적 불만과 정치적 분노로 이어진다. 경제 수치와 체감 경기의 괴리가 커질수록 정치 불신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왜 서민들은 경기부양을 외치는 정치인에게 계속 표를 줄까. 이 질문이 핵심이다. 답은 아마도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 경기부양의 구조적 수혜자가 누구인지, 그 과실이 어디로 집중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 이해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기 살리겠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복잡한 현실보다 쉬운 구호가 더 강하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경기부양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은 도구다. 그 도구를 어떻게 설계하고, 누구에게 향하게 만드느냐가 결과를 가른다.

자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의 경기부양은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다. 반면 취약계층의 실질 소득을 높이고 삶의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의 재정 정책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같은 “경기부양”이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정책이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선거철에 경기부양을 약속하는 후보를 만났을 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것을 권한다.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경기를 살리겠다는 건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없거나 모호하다면, 그 약속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장의 숫자가 커진다고 해서 모두의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그 숫자 뒤에 숨은 구조를 읽는 눈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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