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 후보를 골라주는 게 정말 민주주의일까? — 정당공천제의 두 얼굴

우리는 선거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정당의 로고가 붙은 후보자들을 만난다. 기호 1번, 2번, 3번. 각 정당이 검증하고 선택한 인물들이 우리 앞에 줄을 선다. 많은 시민들은 이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당이 후보를 공천한다는 것, 즉 정당공천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방식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정당공천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무분별하게 정치판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정당이라는 조직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면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편리하다. 수십 명의 후보를 일일이 검토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정당이라는 브랜드는 일종의 신호등 역할을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당이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이 시스템에서 불편한 질문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과연 정당은 시민을 위해 후보를 고르는가, 아니면 정당 자신을 위해 후보를 고르는가.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공천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정당공천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선택권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시민이 선택하기 전에 정당이 먼저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이 대표를 선택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정당공천제 하에서는 시민이 선택하기 전에 이미 한 번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정당이 먼저 후보를 추린다. 시민은 그 추려진 선택지 안에서만 고를 수 있다. 수십 명의 잠재적 후보 중 정당의 심사를 통과한 몇 명만이 최종 투표장에 오른다.

특정 정당이 강한 지역에선 정당 선택 그대로

이것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권력이다. 공천권을 쥔 쪽이 사실상 당선자를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강한 지역구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시민의 투표보다 당의 공천 심사가 더 결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공천과정은 투명할까?

문제는 이 공천 과정이 항상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천을 결정하는 기준이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계파 논리, 인맥, 당내 권력 관계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 실력 있고 시민을 위해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탈락하고, 당의 주류에게 충성도 높은 인물이 통과하는 일이 반복되면, 공천제는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기득권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한다.

실제로 한국 정치사에서 공천 파동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선거 때마다 공천 탈락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당을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공천 과정이 얼마나 갈등과 불신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후보자도 시민 선택보단 당 선택이 먼저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공천을 받기 위해 후보자들이 시민이 아닌 당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당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다음 선거에서도 공천을 받으려면 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 시민의 대표가 되어야 할 사람이 정당의 대리인이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당론과 시민의 요구가 충돌할 때, 의원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공천제 하에서 이 질문의 답은 불편하게도 당 쪽으로 기울기 쉽다.

 

공천제 없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공천제를 폐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쪽도 쉽지 않다.

정당공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 중 상당수는 기초지방선거에서만큼은 정당공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네 일을 하는 구청장이나 시의원까지 정당 깃발을 달 필요가 있냐는 논리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공천제를 없앴을 때 생기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 시스템이 사라지면 자금력과 지명도만 있는 사람이 정치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지역 토호 세력이나 돈 많은 사업가가 정치를 사유화하는 위험이 커진다.

정당이라는 조직은, 불완전하지만, 후보에게 정책 교육과 정치 훈련을 제공하는 기능도 한다. 정당 없이 개인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면, 오히려 조직력과 자본을 갖춘 세력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더 나은 민주주의인지는 의문이다.

또한 정당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마다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 서로 무관한 공약을 들고 나온다면, 유권자는 아무런 맥락 없이 개인을 판단해야 한다. 정당이라는 틀이 있을 때, 정책 책임성이 더 명확해지는 측면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 A 정당이 약속한 것을 다음 선거에서 묻고 심판할 수 있는 구조는 정당이 있기에 가능하다.

요컨대 공천제의 문제는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있다. 공천이 밀실에서 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문제지, 정당이 후보를 검증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인가, 결과인가

정당공천제를 둘러싼 논쟁은 사실 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핵심이다. 공정한 선거, 투명한 공천, 누구에게나 열린 참여 기회. 이 절차가 지켜진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실질적 민주주의의 관점은 결과를 중시한다. 시민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가, 대표자가 실제로 시민의 뜻을 반영하고 있는가. 절차가 완벽해도 결과가 나쁘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패다.

공천제는 이 두 관점 사이에서 긴장한다. 절차적으로는 정당이 내부 규정에 따라 공천하므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로 당선된 대표자가 시민이 아닌 당을 위해 일한다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실패한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공천제는 일종의 진입 장벽이다. 시장에서 진입 장벽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지만, 동시에 품질 보증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장벽을 누가 세우고 누가 통제하느냐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장벽인지, 기득권 보호를 위한 장벽인지에 따라 그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 심리의 측면도 있다. 유권자는 인지 과부하를 싫어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무관심을 유발한다. 정당이라는 브랜드는 유권자의 인지 부담을 줄여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지나쳐지면, 유권자는 후보 개인을 전혀 보지 않고 정당 로고만 보고 투표하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피상화다. 선거라는 형식은 유지되지만 실질적인 심사숙고는 사라진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예비선거(프라이머리) 제도는 공천권을 당 지도부가 아닌 당원이나 일반 유권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천 과정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참고할 만하다. 결국 핵심은 공천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공천 과정 자체를 얼마나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만드느냐다.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

정당공천제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도구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고, 기득권을 영속시키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공천제를 비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비판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우리는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공천 심사 기준은 공개되어 있는가. 당원과 시민이 공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공천 탈락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가.

그리고 유권자인 우리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정당 로고만 보고 투표하지는 않는가. 후보자 개인의 이력과 공약을 직접 확인하고 있는가. 공천의 문제를 정치인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점검하고 개선해야 하는 과정이다. 정당공천제도 마찬가지다. 거꾸로 한 번 바라보는 것,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다.

공천권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는 질문과 같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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