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하면 이공계가 유리할까?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

AI가 코드를 짜고, 로봇이 수술을 보조하며, 알고리즘이 판사의 판결을 돕는 시대가 왔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코딩을 배워라”, “이공계로 가라”, “기술이 미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AI 연구자들의 연봉은 다른 직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면 대부분 기술 산업에서 성공한 인물들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문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대학의 철학과, 역사학과, 문학과는 정원이 줄어들고,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학과 자체가 폐지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밥벌이가 안 된다는 인식은 이제 사회 전반에 퍼진 공통된 편견처럼 자리 잡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은 낡은 것이 되어간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인문학적 사고가 더 중요해진다면 어떨까. 코딩을 배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누구를 위해, 어떤 가치를 담아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은 기술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문학이 가진 숨겨진 힘을 거꾸로 들여다보려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드러나는 인문학의 공백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 챗봇 ‘테이(Tay)’를 출시했다. 트위터 사용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학습하도록 설계된 이 챗봇은 출시 16시간 만에 서비스가 중단됐다. 사용자들의 혐오 발언과 인종차별적 표현을 그대로 학습해 그것을 반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테이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이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는지, 사회적 맥락이 무엇인지, 편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설계가 빠져 있었다.

이 사례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오늘날 AI 알고리즘이 채용 과정에서 특정 집단을 차별하거나, 신용 점수 시스템이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추천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극단적인 콘텐츠로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공통점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실패라는 점이다.

기술은 도구다.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은 기술이 아닌 인문학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자동화와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 남는 것은 판단, 맥락 이해, 설득, 공감, 창의적 문제 해결과 같은 능력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정확히 인문학이 수천 년 동안 훈련시켜온 능력들이다.

 

기술 교육이 가져온 분명한 성과들

물론 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딩, 데이터 분석, 공학적 사고방식은 현대 사회에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리콘밸리가 세상을 바꾼 것은 사실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정보에 접근하고, 원격 의료가 오지의 환자를 살리며, 재생에너지 기술이 기후 위기의 해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술이 인류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켜온 증거는 넘쳐난다.

취업 시장에서도 기술 역량이 경쟁력을 높여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데이터 리터러시, 기초 프로그래밍 지식, 디지털 도구 활용 능력은 이제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요구되는 기본 소양이 되어가고 있다.

인문학 전공자에게도 기술 역량은 필요하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해서 기술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다. 핵심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사고하느냐의 문제다.

 

기술과 인문학의 관계를 사회·경제·심리적으로 보면

경제학자들은 자동화 시대에 가장 안전한 직업군으로 반복적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고도의 기술 전문직과, 창의성과 공감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흥미롭게도 후자는 전통적으로 인문학과 맞닿아 있다.

경제적 관점

옥스퍼드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자동화 위험이 낮은 직업에는 정신건강 상담사, 작가, 성직자, 예술가, 교육자 등이 포함된다. 이 직업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내면, 감정, 관계, 가치를 다룬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주는 일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다.

경영 측면에서도 흐름이 바뀌고 있다. 구글, 애플,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은 오래전부터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강조해왔다. 이 방법론의 출발점은 사용자 공감이다.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먼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을 설계하자는 발상이다. 실제로 애플의 성공 비결을 기술력이 아닌 사용자 경험과 미학적 감각에서 찾는 분석가들이 많다. 스티브 잡스 본인도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심리적 관점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기술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더 깊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AI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때, 사람들은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자율주행차가 사고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를 두고 철학자들이 소환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등장하자 “인간이 어디까지 자연에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윤리 논쟁이 터져 나온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마주하는 질문은 점점 더 인문학적이 된다. 기술은 ‘어떻게(How)’의 문제를 풀지만, ‘왜(Why)’와 ‘무엇을 위해(For what)’의 문제는 여전히 인간이 철학하고, 역사에서 배우고, 문학으로 상상하며 답을 찾아야 하는 영역이다.

사회적 관점

사회적으로도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는 눈에 보이는 비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짜뉴스의 범람, 알고리즘이 강화하는 정치적 양극화, 소셜 미디어가 부추기는 집단 혐오 현상들은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다루는 사회의 비판적 사고력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 타인의 서사를 이해하는 능력, 역사적 맥락 안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능력. 이 모든 것이 인문학이 길러온 역량들이다.

 

결론: 기술 시대에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강한 것일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이 취업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문학을 너무 좁게 이해해온 탓일 수 있다.

인문학은 특정 학과의 이름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실수를 반복해왔는지,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더 중요해진다.

코딩을 배우되, 그 코드가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되,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을 설계하되, 그것이 만들어낼 사회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시대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기술은 알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물어보자.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배우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이미 당신은 인문학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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