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의 역설, 왜 수도권 집중은 더 심해졌을까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가 실시된 지 30년이 흘렀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지방자치는 주민 참여와 지역 발전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2025년 기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138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1995년 이후 지역 소멸은 오히려 가속화됐다.

(출처 : 소멸위험지수/대한민국 – 나무위키)

이상하지 않은가. 지역 주민이 직접 뽑은 단체장이 지역을 위해 일하는데, 왜 지역은 더 빠르게 사라지는지. 혹시 우리가 믿어온 지방자치의 순기능이, 실제로는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지방자치제

지방자치는 정말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우리는 당연하게 그렇다고 배워왔다. 중앙정부보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단체장이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펼치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숫자는 정반대를 말한다. 1995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45.4%였다. 2025년에는 51%를 넘어섰다.

(출처 : 수도권 (대한민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지방자치 30년 동안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으로 집중된 것이다.

특히 비수도권 청년 인구 감소는 심각하다. 20대 인구 비율을 보면 서울과 지방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 전남의 경우 20대 인구 비율이 5%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방자치가 강화될수록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는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혹시 지방자치 자체가 구조적으로 지역 소멸을 유도하는 건 아닐까.

 

지방자치가 지역 소멸을 가속화 하는 이유

거꾸로 생각해보자. 지방자치가 오히려 지역 소멸을 가속화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과열되는 지역경쟁

첫째, 지방자치는 지역 간 경쟁을 극대화한다.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각자도생의 경쟁을 벌인다. 기업 유치, 인구 유입, 관광객 끌어들이기 등 모든 영역에서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한 지역이 얻으면 다른 지역이 잃는다. A시가 대기업 공장을 유치하면 B시는 그만큼 기회를 잃는다. 이 경쟁에서 이미 인구와 자본이 많은 지역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결국 강한 지역은 더 강해지고 약한 지역은 더 약해진다.

2. 성과 집중 정책

둘째, 표를 의식한 단체장은 단기 성과에 집중한다.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단체장에게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 정책은 부담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주민이 체감하는 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축제를 늘리고 건물을 짓고 도로를 넓힌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 창출, 교육 인프라 구축, 산업 생태계 조성 같은 근본적 과제는 뒷전이다. 이런 사업은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고 실패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3. 지역 이기주의

셋째, 지역 이기주의가 제도화된다. 주민이 뽑은 단체장은 당연히 자기 지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웃 지역과 협력보다는 경쟁이 앞선다. 광역 차원의 통합 개발, 권역별 특화 전략 같은 큰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경남의 한 도시가 공항을 유치하려 하면 옆 도시도 공항을 유치하겠다고 나선다. 결과적으로 둘 다 실패하거나, 둘 다 만들어서 둘 다 적자를 본다. 가덕도 신공항 논란이 대표적이다.

(출처 : `부산 가덕도 고집, 지역 이기주의` – 매일신문)

4. 낮은 재정자립도

넷째,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은 더 무기력해진다. 2024년 기준 전국 기초자치단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27%다. 자체 수입으로 살림을 꾸릴 수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중앙정부 교부금과 보조금에 의존한다.

(출처 : 전국 재정자립도 50%도 안 돼…최고, 최저 지자체는 [통계로 보는 행정] | 세계일보)

문제는 이 돈을 받기 위해 중앙정부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독자적 정책보다는 중앙정부 정책에 맞춰 사업을 기획한다. 결국 지방자치의 본래 취지인 자율성은 사라지고, 중앙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말단 기관으로 전락한다.

 

중앙집권은 수도권 집중이 덜할까?

그렇다면 중앙집권이 답일까? 역사를 보면 그것도 아니다.

중앙집권 시대에도 지역 소멸은 진행됐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수도권 집중은 지속됐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절, 지역은 개발 대상일 뿐 주체가 아니었다.

지방자치는 적어도 지역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중앙정부 관료가 서울에서 결정하던 시대와 달리, 이제 지역 주민이 선출한 대표가 지역 문제를 다룬다. 주민 참여 예산제, 주민소환제 등 민주적 장치도 발전했다.

실제로 일부 지역은 지방자치를 통해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전북 완주군은 로컬푸드와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귀농 인구를 늘렸다. 경남 통영시는 문화예술 도시로 재탄생하며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정책도 가능해졌다. 제주도는 청정 이미지를 활용한 관광과 환경 정책을, 울산은 산업도시 특성을 살린 제조업 중심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중앙정부 획일적 정책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 지방자치제의 문제점

문제는 지방자치 자체가 아니라 지방자치가 작동하는 환경이다.

한국은 서울과 지방이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분돼 있다. 수도권에 인구, 자본, 교육, 문화 모든 것이 집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226개 지자체가 각자 경쟁하면 당연히 수도권이 이긴다.

지방자치는 어느 정도 균형 잡힌 국토 구조를 전제한다. 독일은 16개 주가 있지만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등 여러 거점 도시가 분산돼 있다. 일본도 도쿄 외에 오사카, 나고야 등이 역할을 분담한다.

하지만 한국은 서울 하나에 모든 것이 집중됐다. 이 상태에서 지방자치를 강화하면 지역 간 격차만 벌어진다. 약한 지역은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극 3특 전략이 중요시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지방자치와 국가 전략의 부재다. 중앙정부는 국토 전체를 조망하는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어느 지역에 어떤 산업을 배치하고, 권역별로 어떻게 협력하게 할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는 지방에 자율권을 줬다며 손을 뗐고, 지방은 각자도생하며 경쟁한다. 그 사이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결론

지방자치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한다는 주장은 도발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현실 데이터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핵심은 이것이다. 좋은 제도도 잘못된 환경에서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극심한 수도권 집중 속에서는 지역 간 격차를 더 벌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해법은 지방자치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 균형 발전 전략, 광역 단위 협력 체계, 재정 격차 해소 같은 구조적 개선이 먼저다.

양면성을 보자.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지역 경쟁의 출발점이다. 주민 참여의 확대이면서 동시에 지역 이기주의의 제도화이기도 하다.

이 양면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지방자치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대신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제도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환경에서 작동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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